청룡열차처럼 익스트림했던 24시간
2월 7일 오후부터 시작된 그 24시간은, 한동안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집안일과 회사일,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는 건 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서 원래도 한국에 모실 계획이었지만, 아내도 임신했으니 중국에 혼자 계시는 장모님을 이참에 모셔오기로 결정했고, 그에 따라 비행기표, 비자 등을 미리 다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장모님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나 뵙기까지 1주일이 남은 그날, 월요일.
원래 친척의 별장에서 장모님을 격리시킬 계획이었으나 집에서도 자가격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어 이를 문의하기 위해 질병관리청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때는 확진자의 수가 큰 단위로 급증하던 시기였고, 아마도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을 시기라 짐작한다.
그러니… 전화 통화가 될 리가 있나.
오전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전화를 시도해도 상담원과의 연결은 요원하기만 했다.
아내는 조금씩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보건소에도 전화를 걸어봤지만, 역시나 연결이 안 됐고, 관할시 콜센터에서 격리 관련 담당자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전화해 봤지만 당연히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아내는 이제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일은 겪은 사람, 그리고 중국인을 대상으로 비자 업무를 보는 사람한테까지 연락을 하게 됐는데.
이것이 지금 보면 천만다행이었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아내가 정말 큰일을 해낸 게 됐다.
당시 그분은 우리의 질문, 그러니까 장모님이 한국에 입국해서 자가격리를 하려면 어떤 서류를 미리 준비해야 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되려 우리에게 물어본 것이다.
“아니 근데 어머님이 어떤 비자로 들어오시는데요?”
여기서 잠깐 얘기하자면,
우리의 최종 목표는 자녀의 2세 양육 지원을 목적으로 한, 당시 기준 최대 4년 10개월까지 거류할 수 있는 F-1 비자였는데,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사관, 비자센터에 미리 전화로 확인했었고, 거기에서 알려준 대로 먼저 C-3 비자를 받아둔 상태였다.
그런데,
“올해 1월에 법이 바뀌어서 그거로 한국 들어오면 F-1 비자 못 받아요!”
.
.
.
.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우리는 비자센터에서 알려준 대로 비자를 받았을 뿐인데, 이제는 그게 안 된다니!!
정신이 아찔해진 우리는 그 즉시 1345(외국인종합안내센터)로 전화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뻔했다.
‘1월 3일자로 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C-3 비자로 들어오면 F-1 비자를 받을 수 없다.’라는 말과
‘12월 중순에 이미 공문이 들어갔을 텐데, 왜 C-3 비자를 발급해준 건지 알 수 없다.’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최대 ‘1월 6일 이전까지 발급된 C-3 비자는 처리해주고 있다’라는 말까지.
타이밍이 정말 절묘했다.
우리는 12월 초에 영사관으로 문의를 했고, 거기서 알려준 대로 다시 비자센터로 문의해서 구비서류를 확인한 뒤, 12월 중순에 비자센터에서 알려준 대행업체 중 가장 첫 번째 란에 있는 업체에 연락 및 구비서류를 국제우편으로 보냈으며, 12월 하순에 비자 신청이 정상적으로 접수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12월 중순에 전달됐다는 법률 변경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장모님은 2월 14일 비행기표였지만, 뭐든 미리 해두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는 성격이셔서 그 와중에 대행업체한테 더 빨리 받을 수 있도록 급행 추가요금까지 지불했다.
그렇게 발급받은 우리의 C-3 비자 발급일은……
1월 12일.
뇌가 180도 뒤집어진 기분이었다.
아직 중국은 시차 때문에 퇴근하지 않았을 시간이라 얼른 중국의 비자센터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1.그냥 그 비자를 들고 한국에 왔다가 다시 중국에 갔다가 다시 F-1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에 온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격리, 중국에서도 또 격리를 해야 한다. 당시 중국이 거의 한 달 격리를 요구했으니 한국 격리까지 합하면 근 40일을 격리당하는 거다.)
2.C-3 비자를 취소하고 다시 F-1 비자를 신청한다. (비행기표는 1주일 남았는데 비자 신청은 최소 2주는 걸린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급행도 없다. 표도 코로나 때문에 변경이 어려운 비싼 표다)
딱 이 두 가지 선택권뿐이었다.
아내는 절망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긴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똑같았다.
심지어 대행업체는 그런 변동사항이 있는 것조차 몰랐고, 자기네는 그냥 준비한 서류만 가져다 주는 역할이라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급행 돈은 또 비싸게 받아먹었지.
억울했다.
우리가 멋대로 비자 신청을 한 것도 아니고, 비자센터에서 하란 대로 한 건데 이제 와서 안 된다니. 1월 3일에 변동된 사실을 우리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알았다면 당연히 안 했지.
그나마 이렇게 우연찮게 이 소식을 알게 됐으니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슬퍼해야 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 시간.
하루종일 연락이 안 되는 질병관리청은 물론 모든 전화 상담이 끝날 시간.
이후로의 시간은 우리에게는 심장이 들끓는 시간이지만, 더 이상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떠오르는 방법은 딱 하나.
신문고,
비슷한 느낌으로 국민청원이란 기능도 있지만, 그건 글을 올리는 데 조건도 까다롭고, 일정 인원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까진 글이 전달되지도 않아서 애초에 엄두도 안 났다.
하지만 신문고는 그런 복잡한 절차 없이 바로 글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억울한 심정, 우리가 처한 상황을 신문고에 글로 남겼다.
내용 중의 키워드를 인식했는지 전달 부서가 자동으로 표시됐다.
해당 부서로 전달하기로 클릭하고, 브라우저를 껐다.
장모님께는 차마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 소식을 들으시면 크게 상심하실 것 같았다.
다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나의 친가)과는 상의를 했다.
‘어쨌든 중국 국민과 관련된 일이니 중국 대사관에 문의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크게 기대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다시 시간은 흘러 어느새 늦은 밤.
아내는 많이 낙심한 상태였다.
장모님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계속 갈팡질팡했다.
아내를 위로하며 모든 일이 정확해지면 그때 알려드리자고 했다.
그날 밤,
순간적으로 쏟아진 스트레스, 그리고 회사일로 지친 나는 눈치도 없이 혼자 곯아떨어졌고,
옆에서 아내는 잠에 들지도 못한 채 힘든 밤을 지냈다.
.
.
.
그리고 다시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부터 서둘러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내 출근 시간 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출입국외국인청)에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나는 사실 이 역시 아무런 기대가 없었지만, 아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 심정을 나도 알기에, 내비게이션에 새빨갛게 표시되는 길을 향해 운전대를 잡았다.
원래 예약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차마 생각하지도, 또한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어제 예약을 잡았다고 가정해도 가장 빠른 게 2주 뒤에나 순서가 올 터였다.
사정을 설명해서 겨우 대기표를 받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차례를 막연히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우리 번호가 왔다.
창구의 상담원은 많이 지쳐 보였다. 매일같이 수많은, 다양한 사람을 상대해야 하니 당연한 것이겠지.
그렇기에 그에게 우리의 사정을 끝까지 들어줄 여력은 없어 보였다.
상담원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첫째로, 한국에 아직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영사관에 문의해야 하고, 둘째로 법으로 이미 결정된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1월 3일에 변경된 법령이기 때문에 1월 6일 전(이걸 유예기간이라고 해야 할까?)에 발급한 비자까지는 처리해주지만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마무리를 지으며 말이다.
아내는 울먹였다.
하지만 이건 창구 직원의 잘못이 아니었다.
공무원이 정해진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무엇에 따라 처리한단 말인가?
그저 아내를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중국 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어차피 대답은 '자신들은 해줄 게 없으니 영사관에 전화해 보라'였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다. 뻔했으니까.
우리는 거의 포기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낭비할 준비를.
장모님이 너무 걱정하시지 않게 상황 설명을 잘하고,
항공사에 전화해 사정 설명을 하고 변경이 가능하면 변경을, 그게 불가능하면 취소하고 새로 발권을 하고,
F-1 비자 발급을 위한 구비서류를 준비해 중국으로 보내고,
그래, 그래야만 하겠지…
그렇겠지...라고 생각했다.
F-1 비자의 구비서류 중에 결핵 검사증명서가 있었다.
그걸 또 발급받으려면 특정 병원에 장모님이 가셔서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대체 이놈의 상담전화는 한국이든 중국이든 연결이 되질 않는다.
한참을 연결 시도해도 안 돼서 난 우선 다른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외출하고, 아내는 집에서 계속 전화를 시도하고 또 여기저기 알아보기로 했다.
한참 뒤,
내가 수많은 서류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표정이 조금 미묘했다.
어두운 표정은 아닌데 뭔가 기복이 있는 표정이었다.
기대와 의문이 뒤섞인, 묘한 표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통화를 끊고,
아내는 울먹이며 내게 안겨왔다.
“여보…!”하면서.
아,
됐구나.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나는 컴퓨터를 켜고 신문고의 민원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어제저녁에 올린 글인데 신기하게도 이미 담당 부서에 전달됐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다만 하단에는 통상적으로 답변이 오기까지 1주일에서 2주일이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도로 위에서 운전을 하며 나는 아내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
“어쩐지 신문고를 통해서 일이 해결될 것 같긴 한데, 1~2주는 걸린대. 우리가 비자 다 새로 신청하고 표 바꾸고 나서 저쪽에서 해결해 주겠다고 연락 오면 참 웃기겠다.”라고 말이다.
당시 아내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일은 현실이 되었다.
단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아서 말이다.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인지했고, 장모님의 비자를 F-1으로 바꿔줄 테니 금주 안으로 영사관에 방문하라고, 보충해야 될 서류는 나를 통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머리끝 백회혈까지 차올라 있던 무언가가 스르륵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계산이 잘 서지 않아 걱정이던 차였다.
지금 이렇게 서류를 준비해서 중국으로 보내고, 장모님은 결핵검사를 예약해서 받고, 전달받은 서류를 영사관에 전달해서 비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장모님은 대체 언제쯤 오실 수 있는 것인지......
솔직히 요즘 일상이 벅찬 나였기에 장모님이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나였다.
내 부모님은 첫 돌을 바라보는 내 생질, 그러니까 누나의 아이 육아를 도와주시고 계셔서 나까지 도와주길 바라는 건 무리였으니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장모님이 무사히 이번에 오실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뻤다.
안심이 되고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그렇게 다시 회사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응…?).
이럴 땐 원격으로 재택근무하는 게 정말 감사하다니까,
근무 시간 맞추기 위해 무슨 미션 임파써블처럼 날고(?) 뛰긴 했지만…
참고로 그날 추가 서류에 대한 연락이 오지 않아 아내는 다시금 초조해하기 시작했지만, 난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익일 아침에 신문고에 답변이 달려 있었다.
아니 오히려 놀라웠달까, 9시 정각 땡 하자마자 답변이 달렸으니 말이다.
혹시 모르니까 재차 확실하게 확인해 달라는 아내의 요청에 맞춰 추가 문의를 하고 보충 서류를 준비해 보내고,
마침내 장모님께 상황을 전달했다.
그마저도 전달하기 불안해하던 아내를 잘 달래고, 장모님께 상황 설명을 잘하고,
다행히 큰 충격 없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신 장모님은 그다음 날 아침 누구보다 먼저 영사관에 방문해 새 비자를 받아오셨다.
그리고 이 글을 올리고 있는 오늘,
장모님은 우리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신다.
자가격리도 무난하게 마치고, 우리 세 사람, 아니 네 사람 모두 다 같이 즐겁게 지내고 있다.
특히 나는 장모님께 정말 많은 감사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심지어 장모님이 부엌일엔 손도 못 대게 하신다…ㅋ(오히려 그게 어색해 나도 적응 기간을 보내는 중이다)
이렇듯 나의 청룡열차급(사실 실제로 타보지는 않았지만)으로 익스트림했던 24시간은 신문고 덕에 원만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일을 해결했으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무슨 일 있으면 신문고를 이용하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이번에 도움을 받은 나 역시 다음에 또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반드시 신문고를 이용하겠다고, 또한 신문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배려해준 사람들에게 고맙고, 신께 감사할 다름이다.
다만 자신이 정말 억울한 상황에 처해있고, 아무리 방법을 찾아봐도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한 번쯤은 신문고의 북을 두드려봐도 좋지 않을까,
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남겨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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